남해 죽을 때 부산은 2000만 '대박',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때 대한민국 여름 휴가의 상징과도 같았던 경남 남해군 해수욕장이 처참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은모래’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수십만 피서객의 발길을 끌어모았던 영광의 시절은 이제 빛바랜 사진 속에만 남았다. 2024년 여름, 남해군은 해수욕장 방문객 집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총방문객 10만 명의 벽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는 단순한 부진을 넘어, 지역 관광 산업의 근간이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 신호다.

 

남해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11일부터 8월 24일까지 45일간의 공식 개장 기간 동안 5개 공설 해수욕장을 찾은 총방문객은 고작 7만 9320명에 불과했다. 불과 7년 만에 전체 방문객 수가 3분의 1 토막이 나버린 것이다.

 

특히 남해의 상징이었던 상주은모래비치의 추락은 더욱 뼈아프다. 전국적인 인지도를 바탕으로 2018년 한 해에만 11만 5천여 명이 찾았던 이곳은, 올해 4만 명을 겨우 넘기며 과거의 명성을 무색하게 했다. 송정, 설리, 두곡·월포, 사촌 등 다른 해수욕장들 역시 꾸준한 감소세를 피하지 못하며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상주은모래비치에서 수십 년간 장사를 해왔다는 한 상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 여름밤은 불야성이었는데, 지금은 밤이 되면 사람이 없어 유령도시처럼 조용합니다. 북적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요. 여름 한 철 장사로 1년을 먹고 사는데, 이대로는 인건비는커녕 적자만 쌓일 판입니다. 식당, 민박, 가게 할 것 없이 모두가 죽을 맛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텅 빈 해변만큼이나 공허한 절망감이 묻어났다.

 

남해군은 방문객 급감의 주요 원인으로 개장 초기 전국을 휩쓴 극한 호우와 성수기 내내 이어진 잦은 비를 꼽았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상인들은 “해마다 장마와 태풍은 있었고, 주말마다 비가 쏟아지던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날씨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비슷한 기상 여건을 겪은 부산의 7개 해수욕장은 장마가 끝난 뒤 이어진 역대급 폭염 기간 동안 무려 20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모으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문제는 날씨가 아니라, 변화하는 관광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남해의 ‘콘텐츠 부재’와 ‘인프라 노후’에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남해의 천혜의 자연환경은 여전히 훌륭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더 이상 관광객, 특히 젊은 세대를 유인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오늘날의 해수욕장은 단순히 물놀이만 즐기는 공간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핫플레이스’이자, 독특한 체험과 먹거리, 즐길 거리가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남해의 해수욕장들은 여전히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우상 경남관광박람회 조직위원장은 “과거에는 가족 단위로 와서 민박에서 하룻밤 묵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의 관광객들은 숙소의 편의성과 청결도를 꼼꼼히 따지고, 물놀이를 넘어 야간에도 즐길 수 있는 관광 요소와 다채로운 먹거리를 원한다”며 총체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뒤늦게 위기감을 절감한 남해군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해양레저팀 관계자는 “주요 해수욕장의 낡은 시설을 개선하고, 새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홍보 전략을 전면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올해 유치에 성공한 대형 리조트 ‘쏠비치 남해’와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찾는 등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해, 뼈아픈 성적표가 남해의 대대적인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