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들'만 맞는 약 될 것…'위고비' 열풍 뒤에 숨겨진 신(新) 계급 사회의 도래

 역사적으로 '다이어트 약'의 운명은 비극의 연속이었다. '마법의 약'이라는 찬사와 함께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비만 그 자체보다 더 치명적이고 끔찍한 부작용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역사를 반복해왔다. 이 쓰라린 경험칙 때문에 "역시 약에 의존하는 건 위험해"라는 결론에 안도할 때쯤, 어김없이 새로운 시대의 '마법'이 우리를 유혹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뭔가 다르다. 전 세계 비만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이번만큼은 진짜"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염원해 온, 안전하고 효과적인 비만 치료제가 마침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위고비', '삭센다', 그리고 '오젬픽'이다.

 

실제로 '위고비'는 국내 출시 단 8개월 만에 무려 40만 건에 가까운 처방 건수를 기록하며 그 열풍을 증명했다. 이 현상은 단순한 유행인가, 아니면 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혁명의 서막인가. 이 거대한 질문 앞에서, 무작정 신약을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그 복잡한 실체를 파헤치기로 한 책 한 권이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이 약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직접 그 중심부로 뛰어들었다. 약을 개발한 과학자, 거대 식품산업 관계자, 몸과 마음에 관한 세계적 석학 등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전작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디지털 디톡스'를 직접 실행하며 그 과정을 기록했던 그답게, 이번에도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직접 비만 치료제 주사를 맞고, 그 약물이 자신의 몸과 정신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낱낱이 기록했다.

 


투약 초반, 그의 몸에는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평생 그를 괴롭혔던 '음식에 대한 갈망'과 '배고픔'이라는 감각이 무려 80% 이상 거짓말처럼 줄어들었다.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던 '음식 생각'이 사라진 고요함. 그러나 그 대가로 가벼운 메스꺼움이 찾아왔다. 과연 이 약은 인류를 비만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과거의 약들처럼,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숨긴 채 다가온 또 다른 파괴자에 머무를 것인가?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질문의 판을 완전히 바꾼다. 우리는 왜 이 약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는가? 지난 40년간 인류의 몸무게는 왜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났을까? 살을 빼는 것은 왜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이토록 처절하게 어려운 일이 되었는가? 그리고 그는 소름 돋는 진실 하나를 발견한다. 위고비와 오젬픽의 작동 원리는 바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GLP-1 호르몬의 작용을 모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리는, 우리를 끊임없이 배고프게 만들어 더 먹게끔 설계된 '초가공식품'의 원리와 정확히 정반대에 위치한다.

 

이것이 과연 단순한 우연일까? 질 낮은 초가공식품으로 우리 몸을 병들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잠재적 독극물'일지도 모르는 또 다른 약물을 몸에 주사하기로 결심한 인류. 이 거대한 아이러니를 깨닫는 순간, 독자는 더욱 근본적이고 불편한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만약 이 기적 같은 신약의 혜택이 천문학적인 약값 때문에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 계급에게만 한정된다면? 그래서 '날씬함'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새로운 계급의 상징이 된다면? 음식에 대한 강박과 싸우는 섭식장애 환자의 손에 이 약이 쥐어졌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될 수 있을까? 아직 신체와 정신이 발달 중인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이 약을 주사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일일까?

 

책은 명쾌한 해답 대신, 무수한 물음표를 남기며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질문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고 났을 때, 독자는 비만과 약이라는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의 이치를 어렴풋이 깨달은 듯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