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프, "감독이 나에게 '일어나!' 소리쳐"…데뷔전부터 적장과 불꽃 튀는 신경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라는 이름의 무게는 그와 그의 가족에게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혼혈 국가대표'라는 수식어와 함께 그라운드에 선 옌스 카스트로프. 그의 발끝에서 터져 나온 투지와 열정은 비록 2-2 무승부라는 결과에 가려졌지만, 그가 써 내려간 45분의 드라마는 승패를 넘어선 깊은 울림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0일(한국시간) 미국 내슈빌의 지오디스 파크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 아쉬운 무승부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의 진정한 스포트라이트는 스코어보드가 아닌, 선발 라인업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새로운 태극전사' 카스트로프에게 쏟아졌다. 지난 미국전 교체 투입으로 맛보기 데뷔를 마친 그는, 마침내 선발 데뷔전이라는 꿈의 무대에 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 선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과 벅찬 감정이 교차했다. "선발로 뛰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다"고 입을 뗀 그는 "조금 더 뛸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며 그라운드를 향한 뜨거운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45분이라는 시간은 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엔 너무나도 짧았다.

 

그의 데뷔가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TV 앞에서 그를 지켜보던 가족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카스트로프는 "형제가 말해주길, 어머니께서 TV 앞에서 울고 소리를 지르시며 감동을 받으셨다고 한다"고 전하며 벅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역만리 독일에서 아들의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본 어머니의 눈물. 그 눈물은 카스트로프가 태극마크를 달기까지 겪었을 수많은 노력과 인내의 시간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형제들도 매우 기뻐했다. 대표팀 데뷔는 정말 영광이고 환상적인 순간이었다"며 가족의 기쁨을 자신의 가장 큰 영광으로 돌렸다.

 


그라운드에 울려 퍼진 애국가는 그에게 또 다른 감동이었다. "집에서 배운 애국가"라고 밝힌 그는 "경기에 최대한 집중하려 했지만, 나 역시 감정적이었다. 정말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며 태극마크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냈다.

 

물론 치열한 승부의 세계는 감동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그는 경기 중 멕시코의 명장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과 잠시 언쟁을 벌이는 강단도 보였다. 파울을 당해 쓰러진 자신에게 아기레 감독이 "아무것도 아니니 일어나라"고 말했던 상황. 카스트로프는 이를 "경기 중에는 항상 감정이 올라올 수 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는 그의 다부진 승부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제 그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한다. "모든 것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한 그는 "10월 브라질과의 국내 평가전 명단에 포함되는 것이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브라질이라는 강팀을 상대로 한국에서 뛰게 된다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는 그의 말에서, 대한민국 축구의 새로운 희망이 힘차게 싹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고했습니다, 잘 먹겠습니다"라는 한국말이 가장 많이 들렸다는 그의 유쾌한 적응기는, 앞으로 그가 써 내려갈 새로운 역사에 대한 기대를 더욱 부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