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9세 아이들과 함께 골랐다!... 다이애나비가 예언한 1990년대 상징 물건들의 의미

 34년간 봉인되어 있던 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의 타임캡슐이 마침내 개봉되면서 1990년대의 생생한 기억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추억의 상자를 넘어 과학기술의 발전상과 사회적 변화, 그리고 다이애나비의 인류애가 고스란히 담긴 역사적 유물로 재조명받고 있다.

 

27일(현지시간) 가디언과 ABC뉴스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1991년 영국 런던의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병원'(GOSH)에 직접 묻었던 타임캡슐의 개봉 결과가 공개되어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캡슐은 원래 1994년에 문을 연 병원 건물의 기초석을 놓는 의식과 함께 봉인되었으며, 당초 계획으로는 수백 년 후에나 개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병원이 올해 초 새로운 소아암 센터 건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발굴되게 되었다. 병원 측은 다이애나비의 사망 28주기(1997년 8월 31일)에 맞춰 사흘 전인 이날 의미 깊은 개봉식을 가졌다.

 

타임캡슐 제작 과정 자체가 이미 특별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당시 두 명의 어린이와 함께 1990년대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물건들을 신중하게 선정했다. 이 두 어린이는 BBC가 주최한 어린이 공모전에서 당선된 당시 11세 소년 데이비드 왓슨과 9세 소녀 실비아 폴크스였으며, 이들은 1990년대를 상징하는 물건 10개를 직접 골라 납으로 포장된 목제 상자 안에 정성스럽게 담았다.

 

왓슨이 선택한 물건들은 당시의 대중문화와 기술 발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아이템들이었다. 팝 가수 카일리 미노그의 앨범은 1990년대 음악 문화를, 유럽 여권은 유럽 통합의 시대적 흐름을, 포켓 TV는 휴대용 전자기기의 등장을, 재생종이는 환경 의식의 확산을 각각 대변했다.

 

폴크스가 고른 물건들 역시 의미가 깊었다. 영국 주화는 전통과 역사를, 런던 큐 가든에서 직접 가져온 나무 씨앗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눈송이 홀로그램은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홀로그램 기술을, 태양열 계산기는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선견지명이 담긴 선택이었다.

 

여기에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개인적인 의미를 담은 물건들을 추가했다. '더 타임스' 신문 한 부와 자신의 사진을 넣었는데, 특히 신문 1면에는 걸프전 관련 기사와 옛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의 사진 등 당시의 격동적인 국제 정세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를 더했다.

 

34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물건들은 놀라울 정도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일부 물건들에서만 세월의 흔적이 발견될 뿐이었다. 상자를 직접 연 제이슨 도슨 병원 전무이사는 "마치 세대를 넘어 그 시절의 기억과 직접 연결되는 듯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개봉 당시의 감격을 전했다.

 


이번 타임캡슐 개봉은 단순한 호기심 충족을 넘어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자선 정신과 사회적 유산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자선 접근 방식은 이후 영국 왕실의 사회활동 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1989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GOSH의 명예회장을 역임하며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는 정기적으로 병동을 직접 찾아 아픈 아이들과 같은 침대에 앉아 손을 잡고 위로하는 모습으로 대중과 의료진의 깊은 존경을 받았다. 이러한 따뜻하고 인간적인 접근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왕실의 모습이었다.

 

그의 자선 활동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대규모 자선 모금 활동인 '위싱웰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을 통해 모은 기금은 5400만 파운드에 달했으며,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억 파운드(약 3747억원)에 이르러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선 모금액으로 기록되었다.

 

이혼 후 사망 직전인 1996년에는 100여 개에 달하던 자선단체 후원 활동을 6개 핵심 분야로 정리했으며, GOSH는 그 가운데 하나로 남아 그의 마지막까지의 애정을 보여주었다.

 

영국 자선기금관리협회의 스티븐 리 회장은 그의 업적을 두고 "20세기 어떤 인물보다도 더 큰 사회적 영향력을 끼쳤다"고 높이 평가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엠마 하트 교수 역시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영국 왕실을 21세기로 이끌면서 왕실이 사회적 선(善)을 위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오늘날 윌리엄 왕세자의 노숙자 지원 사업, 해리 왕자의 참전 군인 지원 활동에도 그 유산이 이어지고 있다"고 그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