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절대 못할 것들...‘삐뚤빼뚤 바느질’이 주는 위로

 AI 기술이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미지 생성과 창작에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시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여전히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묻는 작가가 있다. 천과 실, 바느질이라는 오래된 매체로 시간과 기억, 감정과 치유를 엮어내는 작가 정민제는 디지털 시대의 속도와 완벽성에 정면으로 맞서며, 손의 흔적이 남은 작업을 통해 진짜 예술의 온기를 전한다.

 

정민제는 자신의 작품을 ‘시간의 레이어링’이라 부른다. 과거의 기억을 담은 오래된 천에 새로운 실로 스티치를 더해 현재의 감각을 덧입히는 작업은, 마치 벽지를 한 겹씩 뜯어가며 시간이 켜켜이 쌓인 집의 역사를 보는 것과 같다. 그는 어머니의 바느질하는 뒷모습, 이불에서 나는 냄새, 시장에서 사온 천 조각 같은 사적이고 일상적인 기억들을 재료 삼아 전시 공간으로 옮긴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누군가 입었던 옷, 집의 커튼, 버려진 이불보 같은 것들이 재활용되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의 창작 공간 역시 집 지하의 자투리 공간이다. 남은 천 조각, 자투리 실, 오래된 냄비와 깨진 그릇, 친구에게서 얻은 화초까지 일상의 물건들이 그의 작업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완벽하지 않은 환경과 재료지만, 오히려 이런 불완전함이 작품에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부여한다. 작업은 거창한 예술 행위가 아니라 집안일을 하듯 흘러가고, 그는 그 안에서 진짜 치유와 저항의 에너지를 끌어낸다.

 

정민제의 바느질은 단순한 수공예를 넘어선다. 손이 떨려도, 감정에 따라 실의 방향이 바뀌어도 괜찮다. 이런 불완전함이야말로 디지털 이미지로는 절대 구현할 수 없는 인간적인 감각이다. 바느질은 반복적인 손동작을 통해 마치 명상처럼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그 위에 실수와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다. 찢어진 천이 다시 이어지고, 무가치하게 여겨졌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그는 ‘치유의 시간’을 완성한다.

 

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는 단지 재료로서가 아니라 정서의 상징이기도 하다. 수세미에 새겨진 짧은 문장들, 알록달록한 천으로 만들어진 화초나 생활 오브제들은 일상의 무게를 견디는 여성들의 감정, 노동, 반복, 저항, 그리고 유머를 담고 있다. “괜찮다”, “고맙다” 같은 문장은 누군가에겐 큰 위로가 된다. 특히 집안일에 치이며 자투리 시간을 바느질로 채우는 여성들의 일상에서 그는 삶의 의지와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런 경험이 응축된 그의 작품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정민제는 삶을 예쁘게 꾸미려 하지 않는다. 대신 삶의 날것 그대로를 드러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AI가 만들어내는 빠르고 완벽한 이미지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의 느리고 불완전한 작업은 정반대의 울림을 준다. 손끝의 촉감, 오래된 천의 냄새, 그날의 감정이 담긴 실밥 하나하나가,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감각을 되살려낸다.

 

‘말의 온도’, ‘사십춘기’, ‘시간과 기억의 레이어링’ 등 여러 전시를 통해 관객과 만나온 그는, 각 전시에서 소소하지만 따뜻한 메시지를 전했다. 반복되는 가사노동, 가벼운 농담, 다정한 위로가 수놓아진 그의 작품들은, 마치 오래된 이불처럼 누군가의 기억과 마음을 덮어주는 듯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정민제의 작업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찢어진 것도 다시 꿰매면 괜찮다고, 버려졌던 것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그것이 바로 AI 시대에도 결코 사라져선 안 될 예술의 인간적인 가치이며, 손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위로다.